순흥 안씨 (順興安氏) | |
1> 시조 : 안자미[安子美] | |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 |
순흥(順興)은 경북 영풍군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급벌산군인데 | |
통일신라 경덕왕이 급산군으로 고쳤고,고려초에 흥주라 하였다가 성종때 순정으로 개칭하였다. 충목왕때 승격하여 순흥부가 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영풍군의 순흥면이 되었다. | |
순흥안씨(順興安氏)의 시조 안자미(安子美)는 | |
고려 신종때 흥위위 보승별장을 역임하고 신호위 상장군에 추증되었으며 순흥현에 정착 | |
세거 하면서 후손들이 관향을 순흥으로 삼게 되었다. | |
순흥안씨는 시조 자미(子美)의 아들 영유(永儒), 영린(永麟), 영화(永和) 3형제 대에서 가세가 | |
일기 시작하여 훌륭한 인맥을 형성하였다. | |
우라나라 주자학의 거봉이었던 향(珦:개명은 송)은 상호군 영유(永儒)의 손자로, | |
상주판관을 비롯한 주요관직을 두루 역임했고, 충령왕때 판판도사사가 되어 섬학전(贍學錢) | |
이라는 육영재단을 설치, 후진양성에 진력하여 유학의 학풍을 일으켰다. | |
향의 아들 우기(于器)는 우부승지와 밀직부사를 역임하고 대사헌을 거쳐 검교찬성사와 | |
판전의시사 등을 지낸후 순평군에 봉해졌다. | |
호부 낭중에 추증된 득재(得財)의 후손에서는 밀직제학 석(碩)의 아들 5형제가 뛰어났다. | |
1324년 원나라 제과(制科)에 급제한 축(軸)은 [관동와주(關東瓦注)]라는 문집을 저술했고, | |
충렬, 충선, 충숙왕 3조의 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특히 그는 경기체가인 [관동별곡(關東別曲)]과 [죽계별곡(竹溪別曲)]을 남겨 문명이 높았고 흥녕군에 봉해졌으며, | |
그의 아우 보(輔)는 공민왕때 동지공거와 정당문학을 거쳐 동경 유수를 역임했다. | |
축의 아들 종원(宗源)은 대사성과 대사헌을 거쳐 판숭경부사가 되어 순성보조공신에 책록되어 | |
순흥군에 봉해졌고, 청렴으로 문하찬성사에 발탁된후 공양왕때 판삼사사에 진봉되었다. | |
종원의 아들 3형제중 막내인 경공(景恭)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창업에 공을 세워 흥년군에 | |
봉해졌다가 태종때 부원군에 진봉되었으며, 그의 아들 순(純)이 세종때 명신으로 유명했다. | |
순흥부원군 문개(文凱)의 손자 천보(天保)는 세종비 소헌왕후의 외조부로서 세종때 좌의정에 | |
이르렀으며, 부윤 지귀(知歸)의 아들 침(琛)은 동지춘추관사가 되어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 |
사예 돈후(敦厚)의 아들 당(塘)은 이조판서가 되어 선비를 뽑아 인재 등용에 힘썼다. | |
그는 강직한 성품으로 오직 나라 일에 전념했으나 소인들에게 미움을 받아 화를 입었다. | |
당의 세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에 오르자 그는 집안이 너무 성(盛)한 것을 염려하여 | |
벼슬에서 사직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좌의정에까지 올랐는데, 청렴한 성품으로 | |
녹으로 받은것 외에는 모아둔 재산이 없어 부인이 갑자기 죽자 장사를 치루지 못하여 남에게 | |
빌려서 치르니 사람들이 그의 청백에 감복했다고 한다. | |
그밖에 순흥안씨를 빛낸 인물로는,양성 현감을 지내고 글씨와 그림으로 유명했던 정(珽)과 | |
지돈령부사에 오른 자유(自裕)가 대표적이며, 한말에 와서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대궐에 | |
들어가 통곡했던 병찬(秉瓚)과 충주의 황강 싸움에서 전사한 승우(承禹)가 뛰어났으며, | |
도산 창호(昌浩)는 [독립신문]을 창간하여 임시정부 육성과 민족 계몽운동에 진력했다. | |
진사 태훈(泰勳)의 아들 중근(重根)은 만주하르빈역에서 이또오 히로부미를 살해하고 | |
[장부는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이 쇠와 같고, 의사는 위대로움에 임할지라도 기운이 구름같도다] | |
라는 유시(遺詩)를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애국가를 작곡한 익태(益泰)와 함께 의절의 | |
가문인 순흥안씨(順興安氏)를 더욱 빛냈다. | |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순흥안씨는 남한에 총 99,937가구, 417,591명이 | |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
3> 집성촌 | |
경북 상주군 공검면 중소리 | 황해도 연백군 금산면 석천리 |
경북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 | 황해도 연백군 화성면 송천리 |
경북 예천군 용궁면 월오리 | 황해도 연백군 운산면 호산리 |
경남 진양군 대평면 상촌리 | 황해도 황주군 수풍면 영풍리 |
경남 함안군 가야면 신음리 |
출처 : 순흥안씨찬성공파
글쓴이 : justi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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