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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순흥안씨

by 산사나이ys 2009. 5. 16.
순흥 안씨 (順興安氏) 
 1> 시조 :  안자미[安子美]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순흥(順興)은 경북 영풍군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급벌산군인데  

     통일신라 경덕왕이 급산군으로 고쳤고,고려초에 흥주라 하였다가 성종때 순정으로 개칭하였다. 

     충목왕때 승격하여 순흥부가 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영풍군의 순흥면이 되었다.  

     순흥안씨(順興安氏)의 시조 안자미(安子美)는  
     고려 신종때 흥위위 보승별장을 역임하고 신호위 상장군에 추증되었으며 순흥현에 정착  
     세거 하면서 후손들이 관향을 순흥으로 삼게 되었다.  
     순흥안씨는 시조 자미(子美)의 아들 영유(永儒), 영린(永麟), 영화(永和) 3형제 대에서 가세가  
     일기 시작하여 훌륭한 인맥을 형성하였다.
     우라나라 주자학의 거봉이었던 향(珦:개명은 송)은 상호군 영유(永儒)의 손자로,  
     상주판관을 비롯한 주요관직을 두루 역임했고, 충령왕때 판판도사사가 되어 섬학전(贍學錢)
     이라는 육영재단을 설치, 후진양성에 진력하여 유학의 학풍을 일으켰다.
     향의 아들 우기(于器)는 우부승지와 밀직부사를 역임하고  대사헌을 거쳐 검교찬성사와  
     판전의시사 등을 지낸후 순평군에 봉해졌다. 
     호부 낭중에 추증된 득재(得財)의 후손에서는 밀직제학 석(碩)의 아들 5형제가  뛰어났다.
     1324년 원나라 제과(制科)에 급제한 축(軸)은 [관동와주(關東瓦注)]라는 문집을 저술했고,  

     충렬, 충선, 충숙왕 3조의 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특히 그는 경기체가인 [관동별곡(關東別曲)]과 

     [죽계별곡(竹溪別曲)]을 남겨 문명이 높았고 흥녕군에 봉해졌으며,  

     그의 아우 보(輔)는 공민왕때 동지공거와 정당문학을 거쳐 동경 유수를 역임했다.  
     축의 아들 종원(宗源)은 대사성과 대사헌을 거쳐 판숭경부사가 되어 순성보조공신에 책록되어
     순흥군에 봉해졌고, 청렴으로 문하찬성사에 발탁된후 공양왕때 판삼사사에 진봉되었다.
     종원의 아들 3형제중 막내인 경공(景恭)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창업에 공을 세워 흥년군에
     봉해졌다가 태종때 부원군에 진봉되었으며, 그의 아들  순(純)이 세종때 명신으로 유명했다.
     순흥부원군 문개(文凱)의 손자 천보(天保)는 세종비 소헌왕후의 외조부로서 세종때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부윤 지귀(知歸)의 아들 침(琛)은 동지춘추관사가 되어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사예 돈후(敦厚)의 아들 당(塘)은 이조판서가 되어 선비를 뽑아 인재 등용에  힘썼다.
     그는 강직한 성품으로 오직 나라 일에 전념했으나 소인들에게 미움을 받아 화를 입었다. 
     당의 세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에 오르자 그는 집안이  너무 성(盛)한 것을 염려하여
     벼슬에서 사직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좌의정에까지 올랐는데, 청렴한 성품으로  
     녹으로 받은것 외에는 모아둔 재산이 없어 부인이 갑자기 죽자 장사를 치루지 못하여 남에게  
     빌려서 치르니 사람들이 그의 청백에 감복했다고 한다. 
     그밖에 순흥안씨를 빛낸 인물로는,양성 현감을 지내고 글씨와 그림으로 유명했던 정(珽)
     지돈령부사에 오른 자유(自裕)가  대표적이며, 한말에 와서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대궐에
     들어가 통곡했던 병찬(秉瓚)과  충주의 황강 싸움에서 전사한 승우(承禹)가 뛰어났으며,  
     도산 창호(昌浩)는 [독립신문]을 창간하여 임시정부 육성과 민족 계몽운동에 진력했다.
     진사 태훈(泰勳)의 아들 중근(重根)은 만주하르빈역에서 이또오 히로부미를 살해하고  
     [장부는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이 쇠와 같고, 의사는 위대로움에 임할지라도 기운이 구름같도다]
     라는 유시(遺詩)를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애국가를 작곡한 익태(益泰)와 함께 의절의  
     가문인 순흥안씨(順興安氏)를 더욱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순흥안씨는 남한에 총 99,937가구,  417,59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집성촌
     경북 상주군 공검면 중소리 황해도 연백군 금산면 석천리
     경북 울진군 기성면 척산리 황해도 연백군 화성면 송천리
     경북 예천군 용궁면 월오리 황해도 연백군 운산면 호산리
     경남 진양군 대평면 상촌리 황해도 황주군 수풍면 영풍리
     경남 함안군 가야면 신음리
출처 : 순흥안씨찬성공파
글쓴이 : justi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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