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을돌고 내려오면서 만해선생 기념관을 찾었다 로타리부근에서 이정표기ㅏ 있는곳으로 150m올라가니 아담한 2층으로된 기와집이있다
입장료가 2,000원 이라고해서 들어갔다 1층은 전시장이고 2층은 행사장이라고 한다 내부에는사진과 책과 메달과 훈장도 전시되어 있었다
백담사에가서본 전지장보다는 적었으며 이곳이 원래 만해선생 전시관 이라고한다
만해 한용운은 조선 왕조 말 국운이 기울어가던 1879년 8월 29일 충청도 홍주땅(지금은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491번지)에서 한응준(韓應俊)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온양 방씨이며, 어렸을 때의 이름은 유천(裕天)이었다.
어린 유천은 6세 때부터 서당에서 한학 공부를 시작하여 9살이 되던 해에《서상기 西廂記》와《통감 通鑑》을 독파하고《서경 書經》에도 능통할 정도의 실력을 쌓았다. 이렇게 뛰어난 유천의 재능에 대하여 조용한 두메산골 박철 부락 에서는 칭찬이 자자하게 퍼져 나갔다.
그 무렵 개화파 주도의 갑신정변(1884)이 삼일천하로 비극적 막을 내린 후일담이 충청도 땅에까지 퍼지더니, 박영효의《건백서 建白書》가 올려지고, 자유민권사상이 대두되고,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그 때 아버지 한응준은 어린 유천을 불러놓고 세상 형편과 국내외 돌아가는 정세를 소상히 설명하여 주었다. ... 안내서는 준비중이며 설명을 잘해 주었다